
8개월이 넘는 기간동안 한 소년(파이)과 한 마리의 호랑이(리챠드 파커)가 조그만 구조보트에서 망망대해를 떠도는 표류기를 생생하게 담은 소설. 하지만 이 소설을 단순한 생존담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파이와 그의 가족들은 캐나다에서 새 삶을 꾸리기위해 그들이 운영하던 동물원의 동물들을 몇 선별해 화물선에 싣고 캐나다로 향한다. 약간 굳은 날씨 때문인지, 정체모를 폭파음 때문인지 배는 난파하고 말고, 파이만이 구조보트로 무사히 대피한다. 그러나 무사無事가 무사가 아닌 것이, 그 보트엔 얼룩말, 하이에나, 오랑우탄, 그리고 벵골 호랑이 한 마리도 타고 있는 걸 발견하는데...
파이이야기의 매력은 역시 호랑이와 함께 갇혀버린 구조보트에서의 일상에 대한 생생한 생존담에 있다. 비상식량이 바닥나고 생존을 위해 택할 수 밖에 없던 식사 메뉴... 거북이를 뜯어 먹는 건 양반, 아니 오히려 영양섭취나 맛, 질감을 따지면 거북이 고기/내장은 특식이라며 나중엔 호랑이 응아까지 먹으려하다 풱 뱉어버리는 파이.. 하루하루 의식주를 해결해 나가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생존담이 주 볼거리지만, 바다 한 가운데서 발견하게 되는 불가사의한 육식 해조섬에서의 몇 박 몇 일 또한 등골을 서늘하게 한다. 또 호랑이에 벌벌 떨다가 호랑이를 길들이다, 한 눈이라도 팔면 등뒤에서 잡아먹힐 걱정으로 떠는 아찔한 동거.얼룩말과 하이에나, 오랑우탄, 호랑이의 뻔할 것 같으면서도 뻔하지만은 않은 먹이사슬 관계, 그리고 소설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파이를 포함한 5마리 동물에 대한 파이의 두 가지 다른 버젼의 생존담 진술이 가져오는 반전... 이 소설이 많이 얘기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소설 끝에서야 나오는 파이의 표류기에 대한 반전 진술에 있다. 첫 번째 버젼은 두 번째 버젼의 지나치게 극한 상황과 충격을 이겨내기 위한 소년의 심리적 방어가 작동해낸 상상의 이야기인 것일까? or 리챠드 파커(호랑이)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결코 첫 번째 버젼을 의심할 수 없게 하는 것일까?
이런 구조적 장치들 모두 책을 내려놓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지만 그래도 가장 애잔하고 슬펐던 부분은 오히려 파이가 드디어 육지에 다다랐을 때다..
얼룩말, 하이에나, 오랑우탄, 호랑이와 한 보트에 남게 된 파이
파이와 리챠드 파커(호랑이)가 날치를 잡는 장면
I wept like a child. It was not because I was overcome at having survived my ordeal, though I was. Nor was it the presence of my brothers and sisters, though that too was very moving. I was weeping because Richard Parker had left me so unceremoniously. What a terrible thing it is to botch a farewell. I am a person who believes in form, in the harmony of order. Where we can, we must give things a meaningful shape. For example-I wonder-could you tell my jumbled story in exactly one hundred chapters, not one more, not one less? I tell you, that's one thing I hate about my nickname, the way that number runs on forever. It's important in life to conclude things properly. Only then can you let go. Otherwise you are left with words you should have said but never did, and your heart is heavy with remorse. That bungled goodbye hurts me to this day. I wish so much that I'd had one last look at him in the lifeboat, that I'd provoked him a little, so that I was on ihs mind. I wish I had said to him then-yes, I know, to a tiger, but still-I wish I had said, "Richard Parker, it's over. We have survived. Can you believe it? I owe you more gratitude than I can express. I couldn't have done it without you. I would like to say it formally: Richard Parker, thank you. Thank you for saving my life. And now go where you must. You have known the confined freedom of a zoo most of your life; now you will know the free confinement of a jungle. I wish you all the best with it. Watch out for Man. He is not your friend. But I hope you will remember me as a friend. I will never forget you, that is certain. You will always be with me, in my heart. What is that hiss? Ah, our boat has touched sand. So farewell, Richard Parker, farewell, God be with you."
Chapter 94 from "Life of Pi", a novel by Yann Martel
역시 아쉬운 부분들도 있다.
표류기로 들어선 후엔 온 몸에 긴장을 늦출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했지만 항해를 시작하기 전 소설 초반에 파이 가족의 배경이 소설에서 불필요하게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느낌을 떨추기 힘들었다. 물론 파이의 가족이 동물원을 운영하면서 파이가 동물들을 어떻게 관찰하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동물원의 동물들이 실제로 어떤지를 얘기하는 부분은 모두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 외에 파이가 이름 때문에 어떻게 놀림을 받았고, 이런 저런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하는 것들이 전체적인 표류기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나에겐 소설의 분량을 늘이기 위한 지루한 잡담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Post Script.
최근 해외 뉴스에선 "와호장룡" "브로크백마운틴" "색계"의 감독인 이안 리 감독이 이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 중에 있는 영화가 2011년에 개봉한다는 소식도 있다. 하지만 파이이야기는 이안 리 감독 외에도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델리카트슨 사람들"의 각본, 감독을 맡았던 쟝 피에르 쥬네(Jean-Pierre Jeunet) 감독과 "식스 센스"를 감독했던 M 나이트 샤말란(M. Night Shyamalan) 감독 등 유명 감독들이 영화화에 눈독 들였던 소설이다. 물론 이 두 감독은 각본까지 짰다가 금방 포기했다고는 한다.
이안 리 감독의 파이이야기... 기대된다. 특히 육식 해조섬과 4마리 동물(반전 버젼에 의하면 사람들이지만...ㅡㅜ)들을 어떻게 표현해 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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